버리는 모습에 놀라 앞으로 팔을 뻗었다. 

“이봐! 너 지금 어디를……!”


“하민아!”


수상했다. 정말 수상했다. 잡아다가 정말로 거꾸로 매달고 ‘너 도대체 정체가 뭐야?!’라고 따지고 싶었지만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주춤했다. 발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자 같은 반 친구 녀석들이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너 여기서 뭐하고 있어?”


역시나 선생이 찾으라고 보낸 건가. 다른 녀석들은 땡땡이쳐도 모르는 척 하면서 왜 이쪽이 사라지면 일부러 찾으러 오는 건지 모르겠다. 썩 기분이 좋지가 않아서 굳은 얼굴로 있으려니 다른 친구 하나가 숲길을 쳐다봤다. 

“아까 경도 패거리가 뛰어가는 걸 봤는데. 혹시 그 놈들이 때린 거야?”


“그런 거 아니야.”


“아니긴 뭐가 아니야. 딱 그런 느낌인데. 안 되겠다. 선생님한테 가자.”


그 녀석의 이름일 경도였던가. 그러고 보니 그랬던 것 같다. 워낙 관심이 없어서 이름도 기억하지 않고 있다가 우연찮게 알게 되었지만 그래봤자 무덤덤했다. 그래서 계속 가만히 있으려는데 양쪽에서 팔을 잡아당겼다. 숲 길로 들어간 고양이가 신경 쓰였지만 선생 심부름으로 온 놈들을 뿌리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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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눈동자가 묘하게 반질거리는 것 같았다. 마치 나에게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것 같았다.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거야?”


저도 모르게 묻고 말았다. 점점 우습게 되어가는 것 같아서 웃음이 나왔다. 

“나도 참. 지금 뭐라고 하는 거야.”


짧은 시간 동안 여러 가지 일이 있어서 그 여파가 생기는 모양이었다. 그러니까 이런 제 정신이 아닌 듯한 말을 하는 거겠지. 이러지 말아야 한다고 머리로는 분명 생각하고 있는데 정말 왜 이렇게 되는 건지 모르겠다. 그냥 가버려야지. 그런데 고양이에게서 자꾸만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아무래도 저 눈동자 때문인 것 같았다. 붉은빛 눈동자. 고양이 중에 이런 눈동자를 가진 아이도 있는 건가. 신기하기도 하고 예전의 일이 떠올라서 중얼거렸다. 

“혹시 내가 어렸을 때 주웠던 붉은 구슬이 네 눈이었던 거 아니야?”


반은 장난으로 물은 거였다. 하지만 그 순간 고양이가 반응을 보였다. 꼬리가 위로 올라갔다가 아래로 내려갔다. 긴 수염이 살짝 흔들리는 것 같았다. 앞서 몇 번이나 말을 걸어도 얌전히 있던 고양이가 구슬에 대해서 말을 꺼내는 순간 갑자기 반응을 보이는 것 같아서 이상했다. 설마 싶었던 난 미간 사이에 주름을 만들었다. 

“네가 정말 그 구슬이 네 눈이었다고 말하고 싶은 거야?”


내내 얌전히 앉아있던 고양이가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는 몸을 돌려 다른 쪽으로 달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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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어른이 서있었다. 곱슬거리는 금발을 하나로 모아서 묶고, 긴 턱수염을 멋들어지게 꾸민 주인어른은 멋쟁이었다. 똑바로 그 얼굴을 보기만 해도 얼굴이 붉어지기 일쑤였던 하녀는 급히 눈을 내리떴다. 하녀의 뺨이 발그레하게 물들었다. 사내는 하녀의 품에 안긴 작은 물체에 관심을 보였다.  


“그게 뭐지?”


주인어른의 물음에 하녀는 안고 있는 아이를 얼렀다. 


“아, 아기입니다. 주인어른.”

“얼굴을 보여라.”


고개를 끄덕인 하녀는 품에 안고 있던 아이를 조심스레 내밀었다. 앞치마에 감싸여서 그 얼굴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 걸 확인한 하녀는 아기를 다른 쪽 팔로 안고 한 손으로 얼굴을 가린 천을 내렸다. 

핏덩이가 달라붙어 있어도 피부는 희고, 머리는 흑단처럼 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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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곳에 초대되어 온것도 가시방석이었는데 국빈이라는 소리를 들으니 심장이 멎을것만 같았다. 차라리 길거리에 나와 황제부부가 마차를 타고 행렬을 하는것을 보며 인사를 하는것이 차라리 마음이 편하겠다며 생각했다.


 







“연비. 매화촌의 사람들은 잘 당도 했느냐?”

“예, 폐하. 조금 긴장하시던걸요.”

“하하하, 황궁에는 난생 처음 들어와보니 그럴만도 하지.”

“소첩도 황궁에 처음왔을때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요. 이렇게 큰데도 다 있구나…싶었지요.”

“어이쿠, 그렇습니까 부인?”


제 옆에서 용포를 벗는것을 도와주던 연의 엉덩이를 받치고 올려안자 명랑하게 웃었다.

이제 드디어 얼굴에 제법 행복이라는게 보이는것 같아 다행이었다. 무섭다며 내려달라 조르는 연의 엉덩이를 한번 툭 쳐준 단율은 침상위에 연을 내려주었다. 서책을 읽고 있었던지 펼쳐진채 뒤집어있는 서책 옆에는 타래과와 매작과가 담긴 접시가 놓여있었다.


“아참. 폐하. 송윤이가 이제 잡아주면 조금씩 앞으로 움직일줄 안답니다.”

“그래? 연비가 잘 돌봐주어 그렇구나.”


뿌듯해보이는 연의 얼굴을 쓰다듬어 주었다. 영양가있는 음식만 가져다 먹였더니 제법 볼살이 올라 귀여웠다. 나의 부인은 이제 나라의 최고가 될 것이다. 황제가 아끼는 부인. 나에게 연은 그만큼 중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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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의견 충돌 없이 이렇게 쉽게 합의가 되기 쉽지 않은데 말이야. 체스터 후작가와 황가는 아주 친밀한 관계가 될 테니 앞으로도 이 좋은 관계가 잘 이어지길 바라지.”







온갖 협박은 다 해놓고 의견 충돌이 없었다는 키엘의 뻔뻔스러움에 알렌은 혀를 내둘렀다. 개인적으로 그를 아주 좋아하고 재미있는 친구라고 생각하지만 정치적인 문제로 얽히면 치가 떨린다. 그리고 그보다 더 끔찍한 게 아샤 문제로 얽히는 건데, 이젠 얽히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비비 꼬여버렸다. 당분간 여러 가지 문제로 저 인간하고 계속 마주칠 걸 생각하니 벌써부터 머리가 지끈거린다.

그런 알렌의 속내야 어떻든 키엘은 한 건 해냈다는 듯 상쾌한 얼굴로 회의의 종료를 선언했다.

“그럼, 이만 일어서지. 아샤가 삐약삐약거리면서 기다리고 있을 테니.”

그렇게 말하며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서는 키엘을 따라 일어서며 알렌이 조금 언짢은 듯 키엘에게 툭하니 내뱉는다.

“삐약삐약이라뇨. 그 녀석 나이가 몇인데…….”

남의 동생을 새 새끼 취급하지 말라는 알렌의 말에 막 접견실 문 앞에 도착한 키엘은 체스터 후작과 함께 뒤를 따르는 알렌을 돌아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내 눈엔 여전히 병아리처럼 보이거든. 아주 귀엽잖아. 너무 귀여워서 가끔 목을 비틀어 버리고 싶다니까.”

살벌한 이야기를 아주 즐거운 듯하던 키엘이 접견실 문 오른쪽에 내려온 끈을 살짝 잡아끌자 이내 밖에서 대기 중이던 시종들이 문을 연다. 열린 문틈으로 한 발자국 내딛던 키엘은 복도 한쪽에서 들려오는 상쾌한 음성에 귀가 확 트이는 느낌을 받았다.

“키엘 님!”

약간 갈라진, 늘 감기에 걸린 듯 조금 높고 갈라진, 아직 소년 같은 그 음성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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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 보름이 되지 않았으니!!”

“예! 마마. 그럴 것이옵니다.”

“호호호! 내일 아침 병문안이나 가주어야겠군. 아이를 잃고 우는 연비의 모습이 아주 기대되는구나.”






얼굴을 가리고있던 부채를 탁 접어 손바닥에 탁탁 치며 웃는 황후의 모습에 상궁은 웃지도 울지도 못하였다. 제발 제 주인께서 허튼일을 하지 않으시기를…

그녀들의 부질없는 바램이 현실에게 외면당하기까지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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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낙화유수(落花流水)


 


단율의 품에 안겨 단잠을 자고있던 연이 심상찮아 눈을 떴다. 연의 얼굴에 붉게 열꽃이 피어있었다.

소스라치게 놀라 어의를 불렀다. 이것이 황후를 유인하게될 계책이라고는 생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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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옵니다.”

“정말? 정말이지? 정말 대장군이 나를 가르치는 것인가?”

“예, 마마. 연비마마의 명으로 소신이 오늘부터 마마의 무예를 가르칠 것이옵니다.”

“연비마마께서? 나를 가르치라고 명하셨어?”

“예. 그러니 가볍게 몸을 푸십시오.”







경윤은 진심으로 기뻤다. 혹여 자신을 미워하면 어쩌나 걱정했다. 어마마마는 연비마마을 몰아내려 한 사람이니까…자신을 미워한다 하여도 무어라 말도 하지 못했다. 헌데 연비마마께서 자신을 위하여 자균을 무예스승으로 보내주셨다. 자균에게 배우고 싶었지만 어마마마께 크게 혼난 후로 더 이상 바라지 않았는데…자균에게 배우고 싶다는 말이 없었는데도 연비마마는 자신에게 자균을 보내주셨다.


“실전에서는 화려한 칼놀림보다 정확하게 내지르는 검날 그리고 보법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전장에 들고 나가는 검은 생각보다 가볍지 않습니다. 일반 병사들이 쓰는 검과 황족이 쓰는 검은 천양지차지요. 폐하의 천무검은 아주 무겁습니다. 지금의 마마께서는 아마 들지도 못하실 것입니다.”

“그렇게 무거운가? 그렇다면 아바마마께선 그 천무검을 어떻게 휘두르지?”

“그만큼 단련하셔야 합니다. 폐하께서는 천무검을 휘두르시는데 한치의 망설임도 없으시지요. 폐하께서는 그만큼 전장에서 몸을 단련하신 것입니다.”

“나도 그렇게 될수 있겠지?”

“그럼요, 마마. 소신은 전에있던 무예스승처럼 가벼이 가르치지는 않을 것입니다. 폐하께서 황자마마는 문예보다 무예에 뜻을 두고 있으니 기본소양을 익힐 만큼만 문예를 배우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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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나라로 가서 살수만 있다면. 무희들은 호나라인들의 첩이 되기 위하여 하늘하늘한 옷감을 풀어 헤치며 춤을 추고 있었다.







“현국의 가무(歌舞)는 호나라와 차이가 많이 지는군요.”

“예, 호나라는 남성도 무희가 될수 있다 들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호나라는 무(舞)도 초하신께 드리는 공양중 하나라 생각하지요.”

“현국은 여인들만 무희가 될수 있으며 몸선을 강조하는 춤을 춥니다.”


저들의 세계에 빠진듯 이야기를 하고있는 연과 단율에게 연회장을 가득 메우고 있는 사람들의 시선이 몰렸다. 제 어미에게서 떨어지지 앉으려는 막내황자를 무릎에 앉힌 연은 단율과 이야기를 하며 어여쁘게도 웃고 있었다. 황제의 무릎에 앉은 황녀는 이것저것 저분으로 집어다 제 어미의 입으로 나르고 있었다. 일국의 왕도 아닌 황제가 자식들을 저렇게 끼고 도는것은 본 전래가 없었다. 항상 강하게 키운다는 일념하에 어느 자식에게도 편중된 총애를 두지 않는것이 보통이었으나 총비의 자식인만큼 황제는 두 황녀와 황자에게 무한한 애정을 쏟고 있었다. 게다가 뱃속에 있는 아기까지 황제의 애정을 담보로 받아둔 것은 자명하다.


“나연아. 어미에게는 그만주고 우리 나연이 먹어야지, 응?”

“하지만…어마마마한테도 주고 싶은걸요?”

“그럼 어미는 많이 먹었으니 우리 나연이 먹자꾸나.”


연은 저분으로 나연이 좋아하는 고기산적을 잘게 잘라 입에 넣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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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도했습니다.”

“어서 들라하게.”







내관이 서신을 가져다주었다. 평소와는 다르게 붉은 두루마리가 금사를 꼬아만든 줄로 묶여져 있었다.

상선도 태운도 이 서신이 무엇을 뜻하는지는 잘 알고 있었다. 황제는 이곳으로 올 것이다.


“사흘 후 폐하께서 현국으로 출발하신다고 하네.”

“그럼 보름정도가 걸리겠군요.”

“그렇지. 빨라도 보름일 것이다. 누구보다 화려할 것이니.”

“연비마마께 알려야지요.”


태운은 고개를 끄덕이고 서둘러 연이 머무르고 있는 궁으로 걸음을 옮겼다. 뒤를 바쁘게 쫓아오는 상선도 오랜만에 만나보는 주군의 용안을 그리며 기분이 좋은듯 하였다.


“전하.”

“고함은 되었다. 연비마마는 안에 계시느냐?”

“예, 전하. 입전 하시옵소서.”


연은 어린 공주와 함께 후원을 산책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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싶어하였다.


“마마, 잠시 들어가겠나이다.”

“응, 들어와요.”







미희가 매작과와 매화다식을 담은 접시를 들고 왔다. 다과를 오랜만에 보자 연도 군침이 돌았는지 얼굴이 환해졌다. 찬보다 다과를 좋아하다니, 역시 열아홉 어린아이 답구나 싶었다.


“그럼 나는 정무 때문에 잠시 나가볼 터이니, 석반은 꼭 같이 들자꾸나. 왕후가 너와 이야기 하고싶어서 아주 몸서리를 치는구나.”

“예, 아버님.”


미희가 연의 손을 향물수건으로 깨끗이 닦아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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